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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메이와쿠, 이지메 상통한다?

마래바 2011. 3. 17.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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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웃 일본이라는 나라는 지진과 해일, 그로인한 원자력발전소 폭발 가능성에 따른 방사능 유출 우려 때문에 일촉즉발 비상상황에 처해 있다.

이번 지진과 해일(쓰나미)은 전 세계에 일본인들의 문화의식과 행동양식을 그대로 보여 믿을 수 없을만큼 질서있는 모습을 보여줘 지구촌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최대 수만 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상 초유의 재난에도 약탈이나 방화 등 재난 뒤에 따르는 일반적인 현상이 일본에서는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평상 시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재난 속에서도 믿을 수 없는 질서의식을 보여준 일본인들

재난 속에서도 믿을 수 없는 질서의식을 보여준 일본인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몇시간 씩 줄을 서 기다리는 모습이나, 먹을 것이 부족한 마트에서 자기에게 할당된 식료품만을 사가지고 나오며 그 더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이나 안된다고 거부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며, 결정적으로 피란 구호소 안에 공급된 라면 수가 부족한데도 주먹밥(오니기리) 하나를 내가 아닌 남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봤을 때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일본이라는 나라에 몇년 간 거주했던 경험이 있는 지라 그네들의 행동 양식이나 생각들을 조금은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긍정적인 면 그 이상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메이와쿠, 배려와 절제.. 그 바탕은 교육에서

왜 일본 사람들은 이런 재난에도 소위 남을 배려하는 모습이 습관처럼 되어 있는 것일까?

흔히 일반적으로 이를 '메이와쿠(迷惑)' 문화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되다는 가치관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는 것을 삼가해야 하는 것은 물론 내가 아무리 슬퍼도 통곡하는 모습은 남에게 폐가 될 수 있으므로 참아야 하고, 의연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왜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이런 모습을 일본인들은 보여주는 것일까?  그네들 속에 진정 선(善)한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일까?  그래서 남을 배려하는 것일까?

이를 해석하는 내용 중에 가장 공감이 가는 것은 교육이 그 근본에 있다는 주장이다.

일본인들은 어려서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을 죄악시하고 늘 머리에 남기도록 끊임없이 교육을 받는다.  일본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도 이런 그들의 모습을 찾기 어렵지 않았다. 조금만 떠들거나 소란스러우면 여지없이 그 부모들은 아이를 앞에 두고 훈육을 시작하곤 한다.  아이를 얼르고 달래는 차원이 아니라 철저하게 훈육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어느 정도된 아이들, 어린이들 모습은 사뭇 달랐다.  어려서부터의 교육과 훈육 때문인지 남에게 폐가 되는 행동이 무엇인지, 어떤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역시 교육의 힘 아닌가?  그네들이라고 해서 별다른 유전자를 타고난 것은 아닌 것이다.


메이와쿠(迷惑)와 이지메(苛め)?

또 한가지 문득 든 다른 생각은 그들의 메이와쿠 문화가 이지메 문화와 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남을 배려한다'는 메이와쿠(迷惑) 문화와 '남을 괴롭히는' 이지메(苛め), 상반되는 이 두 현상이 상통한다니 이 무슨 해괘한 말인가?  마래바(글쓴이)가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닌가?

이지메는 나와 다른 모습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일본인의 속내일 수도..

이지메는 나와 다른 모습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일본인의 속내일 수도..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자.  일본은 집단 사회다.  근대화, 서구화되면서 개인화가 두드러지긴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집단주의 문화를 가진 나라다.  한때 제국주의 시절 혐호스러울 정도의 집단 성향을 보여 줬기에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나라들로부터 미움과 원성을 사고 있는 것이 그 한 예다.

집단사회, 집단문화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따돌림이다.  그네들 주류에 끼지 못하고 그들의 문화를 공유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주며, 또한 형벌과 다름없다.

일반적으로 일본인들은 튀지 않는다.  아니 튀는 것을 싫어한다.  남들과 달라 눈에 띠기 보다는 함께 묻어가는 모습을 더 원한다.  잘못 튀었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받거나 심지어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상당한 정신적 부담을 초래하기 쉽다.

이런 재난 속에서 만약 음식에 욕심을 내거나 자신만 챙기기 위해 남을 무시하는 행동을 한다면 나머지 일본인들은 그런 모습을 어떻게 바라볼까?  과연 그 사람을 자신들의 커뮤니티에 그냥 남겨두는데 동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십중팔구는 그들을 자신들의 무리에서 떼어 놓고자 할 것이다.  자신들의 공동이익을 저해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이지메(苛め)다.  자신들의 무리에서 배제시키는 것.  원래 이지메라는 말이 '괴롭히다'라는 뜻이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일 뿐 실제로는 자신들과 떼어놓으려는 배제 성향이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길 강요(?)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나만의 판단일 수도 있다.  메이와쿠(迷惑)와 이지메(苛め)가 상통한다니.. ^^;;  하지만 수년간 일본인들과 섞여 살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던 두가지 상반된 현상이 왠지 통하는 면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은 전혀 근거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쨌거나 사상 초유의 대형 재난 속에서도 그들은 이런 모습과 행동양식을 그대로 보여줬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며 절제하고 참아내는 모습을 말이다.  그 모습에 전 세계는 경의를 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쓰나미가 휩쓰고 지나간 지금 일본은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라는 공포 앞에 놓여있다.  너무나 걱정스럽다.  하루 속히 이 위험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일본은 물론, 전 세계는 마음으로 응원하고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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