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족
전세계 주요 항공기 납치, 하이재킹 사건들 본문
엊그제 멕시코 여객기 하나가 괴한들에 의해 납치된 사건이 벌어졌다.
아에로멕시코 항공 소속 여객기가 멕시코 휴양지인 칸쿤을 출발했다가 공중에서 괴한에 의해 납치된 것이다. 해당 여객기는 바로 멕시코시티에 비상착륙했다.
납치범들은 멕시코 대통령과의 대화를 요구하며 버텼다.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최악에는 여객기를 폭파시키겠다고 위협했다.
Source: AP
아직 이 사건을 일으킨 괴한들의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니 일부 언론에 의하면 '신에 의한 계시'였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항공기 납치를 떠 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911 사태다. 911 테러야 말로 항공기 납치 사건에 있어 최악의 결과를 보여준 사건이다.
항공기는 일단 하늘로 날아 오르면 공중에서는 상당히 취약한 상태가 된다. 외부로부터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이 항공기 조종사 및 승객 자신의 힘만으로 안전을 지켜내야 한다.
항공기 납치 상태에서도 외부의 도움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항공기 납치나 폭파 위협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항공기 납치는 항공 여행이 활성화 되는 것과 비례해 증가했다. 냉전시대에는 이데올로기에 빠져 자신을 과시하려는 단체에 의해서도 항공기 납치가 빈번했고, 최근에는 민족간 종교 갈등이나 문화 충돌로 인한 납치 사건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나마 최근에는 이런 항공기 납치 사건이 많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어제 그 사건처럼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있다.
그럼 그 동안 항공기 납치, 하이재킹(Hijacking)은 어떤 사건들이, 얼마나 발생했을까?
■ 1970년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에 의한 항공기 납치 사건으로 영국, 미국, 스위스에서 출발 비행하던 항공기 3대를 하이재킹을 시도했다. 총 400여 명의 승객을 태운 항공기를 요르단 사막으로 향하게 했다.
24시간에 걸친 협상 끝에 승객 전부 무사히 풀려났으나 그 댓가로 팔레스타인 수감자 7명을 대신 풀어 줘야만 했다.
■ 1976년
1976년에 발생한 이 사건은 에어 프랑스 항공기를 우간다의 엔테비(Entebbe)로 납치해 일주일간이나 투항했던 사건이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 특수부대에 의해 하이재커인 팔레스타인 범인들은 전원 사살 되었다.
이 항공기에 탑승했던 이스라엘인 105명은 무사히 구출되었으나 승객 3명과 이스라엘 부대원 1명은 희생되었다.
■ 1977년
팔레스타인 무장 게릴라가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기를 납치한 사건으로 소말리아, 모간디슈에서 독일 특수부대는 5일 간에 걸쳐 구출 활동을 벌였다.
납치범들은 조종사를 사살했으나, 독일 특수부대에 의해 납치범 3명 전원 사살되었다. 86명 인질들은 전원 무사히 구출된 사건이다.
■ 1977년
파리를 출발해 하네다로 향하던 일본항공 472편이 중간 기착지인 뭄바이 공항을 이륙한 직후 무장한 일본 적군파 5명에게 납치된 사건이다. 해당 항공기를 방글라데시 다카 공항에 착륙시키고, 600만 달러 및 수감 중인 적군파 9명의 석방을 요구, 일본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던 사건이다.
■ 1981년
파키스탄 항공 제트 여객기 하나가 아프간의 수도인 카불로 공중 납치 되었다. 승객 한 명이 다마스커스로 날아가기 전에 희생되었다. 13일 간이나 파키스탄 정부는 납치범들과 협상으로 벌였으나, 결국 50여 명의 파키스탄 정치범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인질들이 무사히 풀려난 사건이다.
■ 1984년
시아파 과격 단체에 의해 벌어진 것으로 쿠웨이트항공을 테헤란으로 납치한 사건이다. 6일 간의 교착상태 끝에 이란 특수부대원들이 청소원을 가장해 침입해 진압해 종료되었다. 이 사건에서 두 명의 미국인이 희생되었다.
■ 1985년
TWA 납치 사건
협상과 교착상태 끝에 결국 이스라엘 감옥에 있던 시아파 레바논 죄수 31명 전원을 풀어주게 되었다.
■ 1985년
팔레스타인 과격 범인들에 의해 이집트 항공이 몰타(Malta)로 납치된 사건으로, 이집트 특수부대가 진압을 시도했으나 무려 59명이나 되는 승객이 희생되었다.
■ 1986년
팬암 항공기가 납치되었던 사건으로 승객과 승무원 400명이 인질로 억류되었다. 16시간 억류 끝에 파키스탄 특수부대가 진압을 시도해 종료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22명이 희생되었던 사건이다.
■ 1988년
태국을 출발한 쿠웨이트 항공이 시아파 과격단체에 의해 알제(Algiers)로 납치되었다. 이 항공기에는 110명의 승객이 탑승하고 있었다. 16시간 교착 끝에 인질을 전원 풀어주는 조건으로 범인들도 알제를 탈출했다. 납치되는 과정에서 쿠웨이트인 두 명이 희생되었다.
■ 1991년
싱가폴 항공기를 납치한 납치범 4명 전원을 싱가폴 특수부대가 사살해 종료한 사건이다.
■ 1993년
동 이디오피아에서 발생한 납치 사건으로 이디오피아 항공을 납치한 범인 두 명이 전원 사살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여성 승객 한 명이 희생되었다.
■ 1998년
파키스탄 항공기를 인도 하이드라바드 (Hyderabad) 공항으로 납치한 사건으로 파키스탄 특수부대에 의해 납치범 3명을 사살하고 인질 29명을 전원 무사히 구출했다.
■ 1999년
인도항공 납치사건
■ 2000년 2월
탈레반 무장단체가 아리아나 항공기를 납치한 사건으로 이 항공기에는 승객과 승무원 164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 항공기를 런던 인근의 스텐스테드 공항으로 납치했다. 3일 간 협상과 교착 상태 끝에 백기를 들고 투항한 사건이다.
■ 2000년 10월
두 명의 사우디인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 투쟁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항공 비행기를 바그다드로 납치한 사건이다. 도착하자마자 이라크에 투항해 버렸지만...
■ 2001년 3월
이스탄불에서 모스크바로 비행하던 브누코바 항공 비행기가 납치된 사건으로 체첸 분리독립 운동가들에 의해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디나 공항으로 비상착륙했다. 100여 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사우디아라비아 특수부대의 진압으로 종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납치범 한 명, 러시아 국적 승무원, 터키 승객 등 총 3 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El Al 납치 사건, 풀려나 귀국하는 승무원과 승객들
위의 외국 사례들과는 별개로 우리나라에서도 항공기 납치사건, 아니 납북 사건이 있었다.
다름아닌 대한항공기 납북사건인데, 1969년 12월 11일 승객과 승무원 51명을 태우고 강릉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쌍발 여객기(YS-11)가, 이륙한 지 14분 만에 대관령 부근 상공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북한으로 납북되어 원산 선덕 비행장에 착륙했던 사건이다.
결국 이 사건은 지리한 송환 협상 끝에 다음 해 2월 14일 판문점을 통해 승객 39명 만을 송환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이 사건 이후 항공기 탑승객에 대한 검문검색 강화, 민간항공기 승무원에게 무기휴대 허용, 승객의 익명/차명 사용금지 등 보안대책이 강화되었다.
대한항공기 사건은 단순 납치가 아닌 국가간 약탈 행위로 보는 것이 적당할 것이므로 일반적인 하이재킹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위 사례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대부분의 비행기 납치, 하이재킹은 성공으로 끝나지 못했다. 대부분의 국가가 하이재킹에 대해서는 무력진압으로 대응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희생자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위협이나 협박에 굴복하면 안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 하이재킹에 대해서는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다른 사건들과는 달리 항공기 납치, 하이재킹은 수 많은 무고한 목숨을 담보로 벌이는 악랄한 것임은 물론, 자칫 인명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므로 다시는 발생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아에로멕시코 항공 납치사건도 별 다른 인명피해없이 마무리 된 것이 다행이라 하겠다,